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6월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중앙홀에서 취임선서를 마치고 나와 잔디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주권을 위협한 윤석열의 12·3 내란으로 2025년 6월3일로 당겨 치른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의 첫 다짐은 ‘국민 통합’이었다. 이 대통령은 1728만7513표를 얻어 최종 당선을 확정지었다. 직선제로 개헌이 이뤄진 1987년 이후 최다 득표수다. 윤석열의 내란에 대한 국민 분노가 정권교체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 패배 원인으로 지목됐던 서울·수도권에서의 승리와 전통적으로 보수 지지 성향이 강한 부산·울산·경남에서 40% 안팎의 높은 득표로 지역주의 특성이 강했던 한국의 정치 지형까지 흔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5년 6월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대선 개표 결과를 보면, 제21대 대선에선 전체 유권자 4439만1871명 가운데 3523만6497명이 투표에 참여해 투표율이 79.4%로 잠정 집계됐다. 윤석열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맞붙었던 제20대 대선은 일부 학계와 언론이 ‘비호감 대선’으로 명명하면서 투표율이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적으로 77.1%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는데, 제21대 대선에서는 그보다 더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4월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인용으로 윤석열이 파면된 직후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할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지지 유보층이 30%를 웃돌았음을 고려하면, 유권자가 두 달 사이 적극적으로 후보자를 탐색하고 투표권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투표장으로 향한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내란을 단죄해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득표가 과반에 이르지 못했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41.15%)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8.34%)를 합하면 49.49%로 이 대통령의 득표율을 웃돌기 때문에 12·3 내란에 대한 유권자의 분노가 약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준석 후보 지지는 ‘계엄 반대·탄핵 찬성 표’라는 것이 중론이다. 윤석열의 12·3 내란 이후 이준석 후보는 일관되게 윤석열 탄핵을 주장하면서 내란죄를 엄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여론조사와 정치통계 전문가인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장은 “윤석열 탄핵을 지지했던 이준석의 표도 내란 단죄 표로 봐야 하므로, 단순하게 진영 대결로 전체 구도를 잡고 이재명 대통령이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제21대 대선은 윤석열의 12·3 내란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정권교체를 이루는 핵심 동력이었고, 윤석열이 이재명 정부 출범의 일등 공신이 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20대 대선에서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던 서울 ‘한강벨트’를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는 서울에서만 윤석열보다 31만 표를 적게 얻었고, 25개 자치구 가운데 14곳을 내줬다. 전체 투표율에서 0.73%포인트 차로 당선이 갈린 박빙의 승부였음을 고려하면 서울에서의 패배는 이재명 당시 후보에게 뼈아픈 기억이 됐다. 서울에서 민주당이 진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한나라당-민주당 양당 구도가 형성된 이후 2022년까지 민주당계 정당이 서울에서 진 적은 이명박 후보가 531만 표라는 큰 차이로 정동영 후보를 이겼던 2007년 제17대 대선밖에 없다.
제20대 대선 패배 이후 이재명 대통령은 서울에서의 패배 원인을 철저히 분석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 정치학 논문(강원택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이슈: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평가를 중심으로’ 등)과 분석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집값 급등, 그리고 집값 상승에 따른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증가가 이재명 후보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이 때문에 이재명 대통령은 제21대 대선 국면에서 서울 집값 상승과 관련한 발언은 최대한 아꼈고, 서울 아파트 소유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상속세 완화’ 같은 ‘우클릭’을 시도하면서 중산층 끌어안기에 나섰다. 2025년 2월19일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강조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행보 끝에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에게 서울의 25개 자치구 가운데 4곳(용산구·서초구·강남구·송파구)만을 내주고 21곳에서 승리했다. 특히 이른바 한강벨트를 되찾았다. 한강 벨트는 한강에 접한 자치구인 마포·용산·성동·광진·양천·영등포·동작 등의 지역을 일컫는데, 제20대 대선에선 윤석열이 이 지역에서 모두 이재명 당시 후보를 이겼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용산만 빼고 모두 이재명 대통령이 더 많이 득표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이재명의 중도보수 발언과 서울 중산층을 포용하려는 선거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며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와 용산구 말고도 서울에는 보수 지지 성향이 강한 지역구들이 있지만, 증세와 같이 서울 중산층이 민주당에 대해 갖고 있던 우려를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해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이겼다가 이번 제21대 대선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에게 내준 지방자치단체(시·군·구)는 단 한 곳도 없다. 반대로 제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내줬지만, 이번 제21대 대선에서 승리한 곳은 인천 미추홀구·연수구·동구, 경기 포천시 등 38곳에 이른다. 선거 때마다 민심의 바로미터이자 ‘스윙보터’(부동표)로 꼽히는 지역인 충청에서도 큰 승리를 거뒀다. 제20대 대선에서 승리했던 세종시뿐만 아니라 대전 서구·동구·중구·유성구·대덕구, 충남 서산시, 충북 충주시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더 많이 득표했다.
한겨레21이 중앙선관위가 집계한 데이터를 직접 분석해본 결과, 영남 지역에서도 부산(40.1%)·울산(42.5%)·경남(39.4%)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선거와 견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주당계 후보가 대선에서 부산 지역 득표율 40%를 넘긴 것은 이 대통령이 처음이다. 부산을 근거지로 활동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29.85%)과 문재인 전 대통령(39.87%)도 얻지 못한 기록이어서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또한 이 대통령은 제21대 대선에서 부산 강서구와 울산 동구, 경남 김해시, 경남 거제시에서 승리했는데 이들 지역은 제20대 대선에서 윤석열에게 패했던 곳이다.
이 대통령이 대구(23.2%)·경북(25.5%)에서 패하긴 했지만 유의미하게 높은 득표를 기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구·경북에서 20%를 넘는 득표를 보인 뒤 계속해서 민주당 지지가 높아지는 흐름을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선거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던 지역주의는 2000년대 이후 영향력이 작아지는 추세다. 추가 분석이 필요하지만 대구·경북에서 세대에 따라 지역주의 투표 성향 차이가 커져 시간이 지나면서 보수 지지층이 약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역에 기반한 투표 성향 차이가 옅어지는 것은 다행스럽지만, 제20대 대선에 이어 이번 제21대 대선에서도 세대·성별에 따라 투표 성향이 갈라지는 점에는 우려가 제기된다. 아직 중앙선관위의 정확한 집계 결과가 나오지 않아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2030 청년세대 가운데 남성은 국민의힘·개혁신당을 찍는 경향이 강했고, 여성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었다. 김수민 정치평론가(전 구미시의원)는 “이번 대선에선 민주당 집권 가능성이 컸는데도 20대 여성의 표심이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많이 가지 않았는데, 12·3 내란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보수 정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했던 것 같다”며 “많은 여성단체가 민주당의 여성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고 평가하는데도 20대 여성의 표가 쏠린 것은 소극적 지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민주당의 향후 행보에 따라 이탈할 가능성도 크다”고 짚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6월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뒤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제21대 대선에서 12·3 내란 종식이라는 시대정신을 안고 크게 승리했고, 국회 300석 가운데 167석을 차지한 ‘여대야소’ 국면에서 대통령이 됐지만 이재명 정부의 미래를 낙관하기엔 섣부르다. 내란 수괴인 윤석열과의 관계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았고, 대선 후보 결정 과정에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단일화 소동 등으로 유권자를 기만한 국민의힘이 김문수 후보를 내세워 40%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양극화된 정치 구도를 새삼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국민 통합’을 꼽은 것도 이런 사정 때문으로 보인다. 6월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중앙홀에서 취임선서를 한 뒤 이 대통령은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주권을 빼앗는 내란은 이제 다시는 재발해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합당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확고히 마련하겠다”면서도 “이재명 정부는 정의로운 통합 정부가 되겠다.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내란의 책임이 있는 정당인 국민의힘의 김문수 후보에 대한 지지가 40%를 넘었다는 것은 보수 세력이 선거 막판에 강하게 결집한 결과로, 앞으로 이재명 정부에 큰 제약이 될 것”이라며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탄핵 인용문에서 ‘상대 정당을 인정하고 관용과 절제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던 부분을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이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의 초반 움직임을 보면 민주당이 국회에서 이재명 정부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된 대법관 증원 문제 등에 집중하고, 이재명 대통령은 내란 청산과 민생 안정에 집중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에 대해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이번 정부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6월3일 선거일에 한국방송(KBS)·문화방송(MBC)·에스비에스(SBS) 지상파 방송 3사가 전국 17개 시·도 투표소 60곳에서 투표자 519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을 보면,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등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은 결과 63.9%가 ‘계속해야 한다’고 답했다.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 중에서도 42.7%가 ‘계속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수민 정치평론가는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라는 민심은 명확하기 때문에 정부·여당이 상법 개정안이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에 힘을 쏟으면 국민 여론도 지지를 보낼 수 있지만, 이재명 재판 관련 법안에 집중하면 취임 초반부터 야당과 여론의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한민국의 현실도 녹록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하기 힘든 관세 정책으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12·3 내란 이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1%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자신에게 쏟아진 많은 견제와 비판을 이겨내고 대통령이 된 것처럼 이재명 정부는 시민들에게 희망과 극복의 서사를 보여줄 수 있을까. 다시 시민의 시간이다. 이재명 정부를 응원하는 동시에 감시해야 할 시민의 시간.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6월4일 오전 인천 계양구 자택 앞에서 주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6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제21대 이재명 대통령 취임선서식이 2025년 6월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제21대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25년 6월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당 주최로 열린 국민개표방송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2025년 6월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열린 제21대 대통령 선거 국민개표방송 행사에 많은 시민이 참석했다. 이종근 선임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6월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열린 1호 행정명령 비상경제점검 티에프(TF) 회의에 참석해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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