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성질환을 치료할 때는 치료 과정 역시 만성적이다. 죽는 날에나 끝이 난다.”
네덜란드 출신의 철학자, 인류학자, 과학기술학 연구자인 아네마리 몰이 쓴 ‘돌봄의 논리’(김로라 옮김, 임소연 감수, 갈무리 펴냄)가 출간됐다. 저자가 당뇨병 클리닉의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현장 연구하고 텍스트 분석과 전문가·환자 인터뷰를 통해 얻은 지식을 종합 정리한 것이다.
몰은 환자의 ‘선택권’ 개념을 비판한다. 환자의 선택권이 강조되면 돌봄의 복잡성과 윤리적 책임은 숨겨지기 때문이다. 환자는 소비자가 아니라 의료진, 환경, 기술 등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자기 돌봄을 실천하는 ‘능동적 주체’라는 것이 책의 대전제다.
몰은 병을 앓는 삶 또한 삶이며, 나아가 좋은 삶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살 것인지 질문하고, 연약하면서도 즐거움을 경험할 방법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돌봄’은 환자의 상황을 개선하고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끈질기고 관대하게 노력하는 일을 가리킨다. 몰은 시장에 조정을 맡기기보다, 시민으로 함께 의견을 나누면서 선택을 조율하자고 제안한다.
또 기존 ‘돌봄’ 개념을 적극적으로 확장해 ‘의사 노릇’(doctoring)이라는 개념으로 선보인다.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가족 등 돌봄팀 전체가 이 의사 노릇을 공유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돌봄팀 각자 서로의 경험을 존중하며 전문 지식의 독점을 풀고 개방하는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 함께 실험하고, 경험하고, 수정하자는 꽤 이상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환자가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무언가를 결정하고 결과를 모조리 책임지는 의료 소비자 개인’에 머물지 않으려면 도리가 없지 않은가? 의료 기술이 ‘서비스’가 되며, 환자가 ‘소비자’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각 행위자는- 설령 자기 삶일지라도- 한 인생의 구경꾼이 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삶’이라는 명사가 아니라 각자 주체가 되는 ‘살다’라는 동사라고 저자는 힘줘 말한다.
물론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과 환자가 자기 돌봄 능력을 점차 상실해가는 치매는 다르다. 명백하고 돌이킬 수 없는 분기점이 있는 암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당뇨뿐 아니라 다른 질병에서도 돌봄의 논리를 확장하고 번역하는 실천이 잇따라야 한다고 몰은 당부한다. 분명한 건, 지금 이대로 타자화의 시간과 질병의 경험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점이다. 320쪽, 2만2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지음, 창비 펴냄, 1만8천원
한국 최초 전업 공익변호사 단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벌여온 법정투쟁 이야기. 화성외국인보호소 ‘새우꺾기’ 고문 사건,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텔레그램 성착취 및 불법촬영 등 디지털성폭력, 미등록 이주아동 강제퇴거 사건, 성소수자 난민 인정 소송, 10·29 이태원 참사 등을 다뤘다.

문화적 기억과 초기 문명
얀 아스만 지음, 김구원·심재훈 옮김, 푸른역사 펴냄, 3만5천원
2024년 별세한 독일의 이집트 학자이자 문화사학자 얀 아스만의 연구서. 문화적 기억이란 무엇인지, 고대 이후 이 문화적 기억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발전, 재생됐고 어떤 기능을 수행했는지, 이것이 문명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고찰한다. 기억, 정체성, 문화적 전통의 상호연관성을 다룬 현대의 고전.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구정인 지음, 문학동네 펴냄, 1만2천원
데뷔작 ‘기분이 없는 기분’으로 호평을 받은 구정인 만화가의 신작. 딩크 부부로 살기로 했던 선영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2년 동안 만나지 않은 엄마를 만나러 간다. 정거장마다 엄마와 있었던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고, 엄마와 가까워지면서 복잡한 마음이 드는 선영.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여성 쓰기
캐럴린 하일브런 지음, 오수원 옮김, 마티 펴냄, 1만8천원
유명 페미니스트 비평가이자 영문학자인 캐런린 하일브런이 여성 작가들의 분투와 실패를 설명한다. 1988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페미니즘 운동과 비평계의 화제가 된 책으로, 한국에서도 발간 전부터 여성 독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여성 쓰기’에 나타난 서사와 언어의 결핍은 권력의 문제라고 말한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사퇴 뜻 없는 이진숙, 국무회의 꼬박꼬박 참석…‘불편한 동거’ 언제까지
퇴장 앞둔 권성동, 이 대통령 인사에 “극단적 부패인사“ 맹비난
정동영·이종석 ‘남북관계 활로 특명’…위성락·조현, 외교 두축
“대통령이 검찰 개혁 의지 확고한데, 민정수석이 태만? 상상할 수 없어”
‘윤석열 관저 뇌물’ 수사 요청, 최재해 복귀 뒤 “추정이었다” 황당 뒤집기
윤건영 “윤석열, 지하벙커 뜯어 갔다”…청와대 회복 최대 걸림돌 되나
김병기 “아들 국정원 채용에 문제 있다면 의원직 사퇴하겠다”
이 대통령 “3대 특검으로 내란 심판·헌정질서 회복 바라는 국민의 뜻 반영”
문재인 부탁에도 “안 됩니다”…깐깐한 청와대 살림꾼의 복귀
국힘 당원들, 지도부 고소…친한동훈계 때리기 ‘불법 여론조사’ 의혹